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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각보 》 06 - 여백, 그 무한한 너그러움

마지막 수정일시 : 2024. 5. 16.

한국적 아름다움을 관통하는 ‘여백의 미’.
비어있음으로써, 채워지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미술사학자 혜곡(兮谷) 최순우 선생은 평생을 역설한 우리 것의 아름다움을 이렇게 일컬으셨습니다.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고 단순하면서 온아한 멋. 의젓하면서도 너그러워 만물을 끌어안는 넉넉함.”

즉, ‘여백’은 한 치의 양보없이 완고한 형태가 아닌 덜 채워진 채로 완성되는 미적 정신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욕심껏 채우지 않고 비워진 여백의 공간(空)이 있기에, 자연스레 감상하는 ‘나’가 이입될 수 있는 것이죠. 이는 마치 백자 달항아리를 감상할 때 마음속에 차오르는 풍요와 너그러운 감정과 유사합니다. 치밀하고 계획된 완벽한 대칭적 원이 아닌 둥근 달을 연상시키는 어스름한 형상은 보는 이의 감정과 생각이 투영될 수 있는 여지를 가능하게 하니까요. 마치 개방적 구조의 한옥의 차경(借景)이 주변 산세를 적극 수용하여 자연과의 어울림을 추구하듯, 비움이 있기에 생동감을 끌어들일 수 있는 역설적인 미학을 완성하는 것입니다.

한국의 미학은 이렇게 보이는 것 그 너머를 은유합니다. 자연 친화 사상이 반영된 태도는 소박하면서도 정갈한 미의식으로 발현되어 주변과 조화를 이룰 줄 아는 고담한 표정을 그립니다. 보는 이를 압도하는 웅장한 규모가 아니기에 다소 조야한 듯하지만, 자연과 사람의 합일을 추구하는 사상 속 은은히 깃든 아취에서 나오는 격조 높은 미의식이죠. 이는 곧 자연의 일부로서 자신조차 잊게하는 ‘무아’의 지경으로 이르게 합니다. 한국적 정원에서 경치를 소요하며, 잠시 자신을 잊고 주변과 동화되는 관조적 시선을 경험해보세요. 자연과 사람을 이원적으로 나누지 않고 주변과 동화되는 여유와 관용으로부터, 잊지못할 충만한 시간을 선사할 것입니다.